2021년 전시와 달리 이번에는 아기를 키우면서도 일상 속에서 작업을 이어온 작가의 모습이 유난히 인상 깊었다. 전시장 한쪽에는 창가에 드리운 커튼 사이로 바다가 빛나는 최근작들이 걸려 있었다. 잔물결 위로 부서지는 햇빛과 하얀 커튼의 그림자가 겹치며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희미해진 듯한 장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발길을 멈췄지만 나는 한쪽 벽에 걸린 육아와 관련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앨리슨 달튼 브라운은 여성이 예술가를 꿈꾸기조차 어려웠던 1930년대에 태어나 감히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21살에 결혼해 세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돌보는 현실 속에서 활발한 작업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 장난감 블록이 놓인 식탁에서, 주방 한쪽에서 시간을 쪼개며 그림을 이어갔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작업은 결국 전시와 세계적인 주목으로 이어졌다. 어머니였던 그녀에게 그림은 양육과 병행하는 쉼터이자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 역시 일이 쉼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성취감과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쉼터가 있다고 해서 모든 부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연차가 쌓이면 팀을 이끌거나 더 넓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있다. 그러나 나는 늘 혼자 일했고 필요할 때 타 팀 동료와 협업했을 뿐이다. 조직 안에서 팀을 직접 이끌어본 경험은 없기에 그 점에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느낀다.
작가에게도 환경과 시선이 주는 제약은 분명 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38살이세요? 커리어를 시작할 수 없어요. 너무 늙었어요. 포기하세요.”라고 말했을 때 그는 담담히 “그렇다고 젊어질 수는 없잖아요. 젊었을 땐 양육 때문에 많은 작업을 못했는데요.”라고 답했다. 당시 미술계는 추상표현주의가 대세였지만 그는 사실주의라는 자기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시장의 흐름에서 벗어난 길이었지만 결국 그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돌아보면 나 역시 업계의 ‘주류 경로’에서 조금 비켜난 선택을 해왔다. 라이터 포지션은 늘 있었지만 소속 팀이 애매했다. 전략팀에 속했지만 팀원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었고 그렇다고 마케팅 업무를 한 것도 아니었다. 기자를 만나 기업 위기 대응을 하는 전형적인 PR 조직과도 결이 달랐다. 그 경계 어딘가에서 글을 쓰며 길을 이어왔다. 직무적 확장을 포기했던 순간도 있고 그 선택이 아쉬울 때도 있다. 그래도 작가처럼 내가 선택한 방식이 결국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거라는 믿음을 놓고 싶진 않다.
이제 여든여섯 살이 된 작가를 보며 나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환경의 제약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도 결국 중요한 건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조금 더디더라도 나만의 길을 꾸준히 개척해 나가야겠다.
글쓰기를 목표로 삼지 않은 선택이 야기한 우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