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기자로 다시 시작해야 하나
새로운 직장도 잡은 지 9개월. 보통 직장인에게 3, 6, 9개월마다 슬럼프가 온다는 법칙이 있는데, 마침 그 시기인 것 같다. 9개월로 접어드는 지금 다시금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3개월 차, 6개월 차에는 큰 고민 없이 무탈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제 곧 이곳에서 1년 차를 맞이하는 시점이 다가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정체성, 경쟁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해야 하는 대의명분을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만일 내가 사회부 기자 생활을 해봤으면 지금보다는 좀 달랐을까? 그래도 테크를 기반으로 독자에게 정보를 주는 일도 나름대로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열심히 기술만 파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해당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사회와 경제 전반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 정치 판도도 바꾸는 것이라면, 기술, 즉 지극히 매우 작은 부분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등 이러한 의구심이 새록새록 생겨난다. 그렇다. 방향성의 고민을 하고 있는 거다. 앞으로 남은 1년 안에 경쟁력 있는 파트를 찾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승부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기도 한다.
기자 경험을 내세우기에는 사회부 경험의 부재가 내심 신경 쓰인다. 언론의 꽃이라고 불리는 사회부에서 한 번 굴러본 경험이 있다면, 깡다구 하나는 제대로 배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아서다. 피곤하고 고달픈 일이었겠지만은, 그래도 기자와 언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조금 더 빨리 정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생활이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선택하여 취재(자료 리서치와 업체 인터뷰처럼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을 취재라고 한다. 실제로 리서치한다, 조사한다는 말보다는 아무래도 취재한다는 말이 조금 더 익숙하다)하고, 이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있고, 영어 실력도 늘릴 수 있다. 게다가 외국계 회사다 보니 최소한의 성과 요건만 만족하면 그 가운데서 월차를 능동적으로 쓸 수 있는 등 복지 제도도 있다. 업무 강도에 있어서 일간지보다 가볍다.
다시 정리하자면, 삶을 편안하게 살면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낼 것이냐, 아니면 삶이 조금 고단하고 가족,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대의명분을 위해, 정의를 위해 일하느냐 그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국내 취재 기자의 삶은 피곤하다. 정말 피곤하다. 아이템과 트렌드를 쫓기 위해 다른 매체는 어떻게 기사가 나왔는지도 체크하면서, 관계자들 만나서 취재도 해야 하고, 기획기사도 쓰면서도 취재원과의 관계도 잘 다져놓아야 한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1주일에 최소 6일을 한다. 물론, 1주일 7일을 일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나는 전문가나 업체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보고서를 찾아보거나 책을 보는 등 자료에 기반한 취재를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다. 기술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작업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깊이 있는 답변을 유도하지 못할 거다. 기자가 모든 것을 다 알면 기자를 하고 있겠느냐는 그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기자라면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고 이를 토대로 진정성있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이런 내 작업 방식과 관심 주제가 기사로서 얼마나 가치있는지는 모르겠다.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이는 내 경쟁력에 보탬이 된다고는 볼 수는 없다.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미래의 예견에 가치를 느낀다. 가까운 미래 기술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그리고 도시의 모습과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 갈지를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기사에서는 ‘현재’라는 팩트를 근거로 미래를 예측한다. 그런데 이 방향으로의 기사가 정말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현재 생체인식, 인공지능 등의 차세대 기술에 관심을 두고 해당 기술의 구현 방식이나 각 기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형태 등을 취재하고 있다. 내 관심사는 여기에 머문다. 이로 인해 사회, 경제, 문화, 정치가 어떻게 변할지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예측할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력있는 글을 쓰려면 단순히 기술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멈추면 안된다. 가치를 제공하려면 현재 기술이 우리의 삶에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치는지도 함께 다뤄야만 한다.
물론 늘 이런 사명감을 지니고 살 수는 없다. 기자도 에디터도 사람인지라 늘 해야 하는 업무만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이처럼 블로그라는 개인화된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로서의 사명, 유용한 정보를 공유해야한다는 부담감을 한결 내려놓고,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그래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관철하는 활동. 그리고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어떤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 그런 것들.
정말 사회부부터 굴러서 깡다구를 길러야할 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 어쨌든 나는 내 방식대로의 길을 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왠지 사회부 기자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충만했는데, 본 글을 이어 쓰는 시점에서 다시한 번 생각이 바뀌었다. 미디어오늘의 언론사 병영문화, ‘사쓰마와리’ 가 저널리즘 망친다라는 글을 보고 다시 본질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 나와는 관련이 없더라고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불온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곳은 바로 사회부.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언론관을 관철하기에는 한국 언론이 보여주는 행태가 사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일개 기자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데스크에 앉아 기사를 만지는 국장이나 팀장급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지금의 언론은 내가 원하는 수준의 정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것을 참아내면서 과연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자신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도전을 지금도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순간 일렁한 감정에 잠시 휘청거린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선배 말대로 취재 기반으로 승부를 거는 기자도 있을 테지만, 나처럼 자료 리서치로 획득한 정보를 기반으로 기술을 좀 더 쉽게 설명하는 데 승부를 걸 수도 있고, 또는 외신에 기반한 기사를 쓰는 사람도 있는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같은 직장 선배도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다며, 그중에서도 자신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토대로 기자가 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럽게 조언을 해줬다.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상태에서 사회부 기자가 되는 선택지를 다시 고민하는 오류를 범했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다면 외국어도 잘하게 되고, 외신 소식도 더 많이 접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 어느 것 하나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자 충분히 노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부 기자가 되더라도 만족할까? 절대 아닐거다. 더이상 자리만 탓하면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변하기로 했다. 적어도 기자라면 기자라는 타이틀로 업체를 만난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한 취재 활동을 통해 기사를 써내리는 데 주력하기로 말이다. 회사에서는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기자의 역량을 키우려면 나 스스로 능력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
자리 탓을 하느라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어리석음. 아마도 이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본 글을 3개월 마다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내 목적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삶의 가치관을 잠시 내려두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봐야겠다. 물론 미디어 회사도 영리를 추구해야만 영속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저널리즘 가치를 쫓아야만 미디어로서 인정받는 특수한 현상을 고려했을 때, 지금 있는 회사에서부터 기자다움을 쫓아야겠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조중동이나 지상파 방송 기자가 된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회사에서 요구한 일이 아니더라도, 가치가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해 현장 취재를 나가야겠다. IT업계에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쓰는 곳을 목표로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각계 전문가의 도움으로 보다 더 나은 기사를 쓰는 것. 그것이 목표다. 글쓰는 일을 선택하길 참으로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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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티스토리 글을 옮겨와서 일부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