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창작자에게 중요한 8가지 덕목

지난 11월 8일 디캠프에서 열린 아웃스탠딩 토크콘서트에 다녀왔다. 친정(?) 식구들 얼굴을 오랜만에 보고 싶었다. 물론, 다른 기자들의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 노하우 팁을 얻는 게 이번 방문의 주목적이었다.

2시간가량 진행된 행사를 듣고 나니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아웃스탠딩에서 보낸 지난 시간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다른 참가자와는 달리, 나는 실전을 먼저 경험해보고 정리된 이론을 듣는 상황이었다. 저들처럼 1주일에 2~3개의 기사를 써내며 어떻게 하면 독자가 만족할만한 콘텐츠를 쓸 수 있을지 고민해본 (내가 아는 바로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그들이 지난 몇 년간 콘텐츠를 만들면서 몸소 배운 실용적인 내용으로 슬라이드를 채웠다는 걸 즉시 인지했다.

성원님의 첫 데뷔 무대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마치 내 아이의 첫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한 느낌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초등학교 갈 만한 나이의 자식도 없고, 결혼도 안 했다(ㅋㅋㅋㅋ).

‘아웃스탠딩 기자들은 어떻게 뉴미디어 포스팅을 만들까’ 토크콘서트(매진)

매일같이 콘텐츠와 사투를 벌이던 시간을 뒤로한 지도 몇 개월 지났다. 글쓰기 감을 놓치지 않으려 브런치도 꾸준히 쓰려고 하지만 1주일 한두 번이 고작이다. 그조차도 팩트파인딩에 목숨 걸 이유조차 없어서 에세이 수준의 글만 가끔 쓰는 정도다. 회사 업무로 글 쓸 기회가 하루라도 생기길 기다리는 이 시간이 사실, 정말로. 너무나 견디기 힘들 정도다( ㅠㅠ)

정황상(?) 사실상 전투적으로 글을 썼던 감각이나 열정이 무뎌지고 있다는 걸 느끼던 찰나, 이번 아웃스탠딩 토크콘서트는 내게 새로운 자극제가 됐다. 놓치고 있었던 몇 가지를 새롭게 다짐한 계기를 다시 되잡았다고 봐도 좋다.

콘텐츠 제작자의 노고를 생각해 모든 내용을 다 공유하진 않겠다. 대신, 내가 아웃스탠딩에서 받은 피드백과 일부 강연을 토대로 ‘콘텐츠 창작자에게 중요한 8가지 덕목’에 대해 기술해보고자 한다.


ps.쓰다보니 용식님과 성원님 관찰일기가 되어버렸다. 한창 바쁘게 일할 땐 무의식의 영역으로 흘려보냈는데 왜 지금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은 에세이 글이니 문단별 분량이나 짜임새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1.트렌드에 민감해져라

용식님과 성원님은 요즘 30대 중반(?)답지 않게 꽤 신세대에 속한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중문화’ 관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용식님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콘텐츠의 미래가 보인다고 주창했던 사람이었다. 무한도전은 물론, 지디 팬(?)을 자청하며 늘 새로운 트렌드를 쫓는 데 일과를 할애한다고 이야기했다.

성원님은 한 달 10만원 이상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데 할애하는 사람이다. 자취맨인 그가 아침마다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아침식사 대용으로 커피를 마시려는 것만은 아니었다. 하루 최소 30분 이상 탐독하고자 아침마다 스타벅스를 들린다고 이야기했다. 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그는 최신 책에서 콘텐츠 영감을 받는다며 자신이 읽다 만 책(ㅋㅋ)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2.아이템을 수십 개 쌓아 놓아라

용식님이 내게, 나는 성원님에게 자랑하던 게 하나 있다. 바로 ‘아이템’ 박스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매일같이 점검해야 할 목록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관심사가 ‘생산성’과 ‘인공지능’이었다. 자연스럽게 해당 카테고리 내 아이템만 수십개 쌓여만 갔다. 반면, 규제, 이슈, 포털 쪽 파트에서 매주 1개 이상 아이템을 찾아내는 일이 되려 더 힘든 상황이었다. 기자가 자기 기사를 쓰는 데 쏟는 시간만큼, 업계 기사나 리포트를 또 많이 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자기 관심사에 매몰될수록 큰 숲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기자 개인의 관심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평소에 보는대로, 생각하는 대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아이디어가 계속 샘솟는다. 그렇게  샘솟은 아이디어를 트렐로(Trello)나 취재 수첩에 적어놓고는 한다. 그럼에도 문제는 생산성과 인공지능 아이템만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물론 카카오 빠져서 카카오 이슈만 눈에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카카오에 대한 열혈한 애정을 자제해서 썼던 기사들이 그 정도다(ㅋㅋ).

작업한 글 : 카카오 ‘뉴플친’의 3가지 관전 포인트

지금도 콘텐츠 아이템을 트렐로에 쌓아두고 있다. 회사와 개인 프로젝트 관련해서 말이다. 아이디어는 샘솟아 날 때마다 어디론가 적어놔야 한다. 인간의 뇌는 그렇게 섹시하지 못하다.


3.머리를 식혀라, 그리고 놀아라

이따금 용식님과 홍대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가 있었다. 물론 어디를 가시느냐고 따로 묻지는 않았다. 머리를 식히러 1시간씩 산책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꼭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들고 나가곤 했다. 가끔 내게도 “사무실에만 앉아 있으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기사 쓰다가 막히면 주변 산책을 하고 오는 것도 좋다”고 지나가듯이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용식님은 종종 열심히 노는 걸 권고하기도 했다. 자신은 창업자라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하는 운영 이슈가 많아서 주말 중 일요일은 일에 할애할 수 밖에 없지만, 크리에이터인 여러분은 빨리 지쳐선 안된다고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스타트업 대표이기 전에,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숙명을 타고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인 듯했다.

그래서 실제로 아웃스탠딩에서 일할 땐 주말에도 즐기면서 인공지능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쉴 땐 쉬고 일할 땐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아는 사람이었다.

성원님은 이따금 카페테리아에 놓인 빈백에 앉아서 노닥거리곤 했다. 아니면 책상에 엎드려서 자거나. 졸리면 20분~30분 정도는 잔다고 했던 기억이 얼핏 난다.

아울러 성원님과 나는 산책메이트였다. 편의점 카페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종종 같이 먹으며 아이템에 관해 여러 아이디어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여러모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성원 덕분에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 물론 성원님과 나는 오후 10시까지만 술 먹고 헤어지는, 좋은 직장 동료 사이다(성원님은 ‘선’이라는 걸 지킬 줄 아는, 매너가 있는 사람이다).

두사람은 엉덩이 무거운 것 마냥 앉아서 기사만 작성하거나, 혹은 기사가 잘 써지진 않을 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머리를 식히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4.개요를 짜라

이건 아웃스탠딩 합류 후 2주간 트레인 받았을 때 일이다. 첫번째 과제는 ‘닷컴신화 야후, 어떻게 망가졌나’였다. 용식님으로부터 첫 피드백은 ‘한 글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보니 주제가 모호해졌다’는 것이었다.

사실 야후가 최정점을 찍고 내려오기까지, 그 모든 스토리를 다루면 그건 역사서일 뿐이다.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는 콘텐츠를 쓰려면 날렵하게 주제를 선정해야 했는데 그 부분을 놓쳤다. 범위 설정의 부제는 주제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물론 기사 자체가 재미없다는 피드백도 덤으로 얻었다. 물론 기사 주제를 ‘타인’이 정해준 상황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재미가 없어도 정말 없었다. 실제로 야후 기사는 스스로도 많은 버거움을 느꼈다. 야후라는 기업 자체에 흥미가 1도 없었다.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왜 해야 하는지 납득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선 독자에게도 그 어떤 감동이나 재미를 줄 수 없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대단히 긴 호흡의 글을 쓰느라 글의 방향성을 잡기도 쉽지 않았고, 서론-본론-결론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선배는 이렇게 긴 글을 어떻게 쓰세요?”라고 물어봤더니,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개요를 쓰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차 싶었다. 개요 없이 글을 쓴다는 건 설계도면 없이 집을 짓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획/계획도 없이 글쓰기 급급해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1부를 맡은 용식님은 개요짜기를 두고 ‘적은 비용으로 시행착오를 줄이는 일’이라고 비유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미 다 써버린 글은 나중에 수정할 수도, 손댈 수도 없다.

성원님은 개요를 짜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정보를 어떻게 연결하느냐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개요짜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정보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독자는 콘텐츠를 다르게 느낀다. 기밀하게 구조를 짤수록 독자는 글에서 합리적인 개연성에 수긍하게 된다. 논리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수록 구멍이 줄어든다. 글의 주제가 명확해지고 분량 배분도 쉬워진다. 이것이 개요를 반드시 짜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짜야 하는지는 사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세요?”라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라서다.


5.첫째도 독자, 둘째도 독자, 셋째도 독자

예전에 O2O 스타트업을 취재했다. 한창 POS 사업에 대한 지분투자나 제휴가 늘어나던 시기였다. 오프라인 매장을 잡으려면 결국엔 실질적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POS 시장을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때이기도 하다.

이 시장을 깊게 파야만 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POS 사업자와 홍보담당자를 만나가며 여러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썼다. 그런데 기사를 보던 선배가 내게 “야, 너 너무 업계 사람만 이해하는 기사를 쓰려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당연히 POS 시장에 관심이 많거나, 해당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사람들,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IT 기사를 보지, 누가 보나 싶었다. 그랬더니 선배는 업계, 즉 기자가 보고 홍보 담당자가 보는 기사를 쓰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국내 언론 매체 상당수가 기업 광고에 많은 걸 의존하고 있기에 담당자의 허를 찌르거나 그들이 인정할만한 기사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수긍하면서도 수긍할 수 없었다. 기업을 압박하거나 기업이 좋아할만한 기사를 쓰는 기자는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웃스탠딩에선 이런 혼란은 없었다. 오로지 독자를 위한 기사를 쓸 수 있는 구조 때문이었다. 아웃스탠딩 콘텐츠가 유로로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돈을 내는 시스템에선 당연히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쓰는 게 제1원칙이 됐다. 기업들이 보내는 보도자료를 처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고 기업 홍보 담당자들을 압박하는 기사 같은 것도 쓰지 않아도 됐다.

독자가 과연 이런 콘텐츠를 원할까, 이런 류의 콘텐츠라면 정보를 원할까/재미를 원할까/분석을 원할까를 심도있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공급자와 독자가 원하는 정보의 접점을 계속 맞춰나가는 게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역할이다.

그래서 정말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게 쉽지가 않다. 블로그에 쓰는 글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지만, 돈을 받고 쓰는 글은 누군가의 니즈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

때때로 필자는 이런 압박감 넘치는 상황을 즐기고는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퀄리티의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돈을 주는 독자나 돈을 주는 회사가 글을 써야 할 명분이 되어주기도 한다.


6.하늘아래 새로운 것 하나 없다 : 재해석과 큐레이션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 1%의 새로운 것, 99%의 데이터가 글을 만든다”

용식님이 2주간 트레이닝 때 내게 해준 말이다. 아마 새벽 1시까지 내게 무엇인가를 ‘신나게’ 전수해주셨던 그때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열심히 뭔가 선배들배우겠다는 후배한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겠다는 의지! (물론 택시비는 따로 주셨다)

어느 날 용식님은 취재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날고기는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물어봤다. 선배들의 공통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기업마다 정보원을 심어 놓는 게 정석이라고 보자. 그런데 새로운 부서에 배치되거나 그 정보원이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고 치자. 그럼 정보원이 없어서 기사 못쓰겠다고 할꺼야?” 기자가 기사를 안 쓰는 건 직무유기 중 하나다. 어떻게든 기사를 만들어내는 게 기자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용식님이 내린 결론은 하나라고 했다. 바로 조각조각 흩어진 정보를 모아 새로운 정보로 가공하는 것. 이미 이세계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정보는 공개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다만 누군가 그 가치를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고만 있다. 이렇게 공개된 정보를 가져다 해석한다면, 홍보 담당자나 취재원으로부터 입수한 취재기사보다 더 높은 퀄리티의 글을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계기라고 부연했다.

물론 재해석과 큐레이션은 누가 해주는 게 아니다. 크리에이터 본인이 다 직접 해야 할 영역이다. IT기자도 기업의 재무상태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늘 아래 새로울 게 없으니, 인사이트를 담은 글 100개를 읽고 이를 토대로 내식대로 새롭게 쓰면 그것대로 새로운 콘텐츠가 될 수 있다.


7.많이 쓰고 또 쓰라

아무도 내게 글 쓰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렸을 때 어떤 소설가가 진행하는 백화점 글쓰기 센터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죄다 “~써보세요 “~생각해보세요 “~을 읽고 자기 생각을 말해보세요” 였을 것으로 얼핏 기억난다. 그 소설가 선생님이 따로 피드백을 주진 않았다. 그 소설가 선생님이 쓴 책을 교재삼아 공부했다는 것만 뇌리에 박혀 있다.

그 뒤로 초중고등부에선 간간이 글쓰기 대회도 참여하고 대입 논술 준비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테크닉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근거를 탄탄히 제시하고 서두에선 ‘환기’를 하라는 이론적인 이야기만 해댔다. 이론적인 것만 백날 배우면 뭐하나 싶어서 그냥 이론적인 것은 다 빼고 문제 하나하나를 푸는 데 집중했다.

사실 기자가 되어서도 글 잘쓰는 법에 대해서 따로 배우진 않았다. 물론 기사의 형식은 배웠다. 조금 더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글의 구조를 짜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내용을 채워 넣는 일은 결국 기자 본인의 취재역량에 좌지우지됐다. 선배들이 데스크를 보더라도 글의 방향이나 구조에 대해선 딱히 터치하지 않았다. 제목이나 리드, 맞춤법 등을 주로 점검해주셨을 뿐이다.

지난 글쓰기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말, 누가 나더러 이렇게 써보는 게 좋다, 이렇게 하는 게 좋다는 가르침을 주진 않았다. 공통적인 말은 “그냥 많이 써보고 좋은 글은 따라 써보고 평소에 생각을 잘 정리해두어라”라는 것 뿐이었다.

실제로도 그렇다. 많이 써보면 분명히 는다. 근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린다.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해도 글은 분명 는다. 근데 노이로제에 걸릴 뿐이다. 주야장천 무엇을 왜 써야할 지 시뮬레이션 돌리는데 뇌가 남아날 일이 있나. 분명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글 쓰는 데 스트레스 안받는 사람이 있다면 천재이거나, 아니면.. 바보다.


8.덕질과 열정(진정성)은 배반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글을 잘쓰는 기준의 명확한 잣대도 없고 글쓰기 목적이나 청중, 형식에 따라서 정말 만 가지 형태가 나온다. 이론적으로 배운다고 해서 소설을 더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사다운 기사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답은 현실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체득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진짜 이렇게밖에 말은 못 하겠다.

사실 이런 말을 할 입장은 못 된다. 평론가, 비평가와 비교한다면 하잘것없는 실력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편타당하게 ‘잘쓴 글’이라고 평가한 걸 구태여 분석해보자면, ‘진정성’을 얼마나 드러내느냐의 차이로 구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덕질을 누가 이기겠나. 그건 아무리 잘난 평론가 데려와도 덕질로 갈고닦은 실력을 이기진 못할 거다. 결국 문장력보다는 ‘얼마나 잘 아느냐’, ‘얼마나 그 도메인을 이해하느냐’로 글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진정성을 갖고 관심을 두는 분야가 각자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글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팩트 지향주의적인 사람은 소설이나 시엔 젬병이다. 에세이도 손발 오그려서 못쓴다. 각자에게 잘 맞는 방식의 글쓰기가 분명 있다. 자기 몸에 맞는 글쓰기 스타일과 도메인(키워드)을 찾기가 어려워서 다들 헤매고 있을 뿐이다.

글은 쓰기 위해서 써야 하는 게 아니라 쓰고 싶은 걸 써야 한다. 뭘 쓸지조차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위태로운 생각이다. 본질보다는 행위에만 신경 쓰는 것과도 같다. 어떤 영역에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지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에세이 같은 거 말고!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 말이다.


이번 글이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삶을 이해하는 바로미터가 됐으면 좋겠다. 직업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수만이 글쟁이로서 영광을 누릴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영감이 떠올라야만 겨우 쓴다는 글을, 어떤 이는 매일같이, 의무적으로 써 내려가야 한다. 그게 그 사람이 돈을 버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쓴 글은 독자와, 자기 자신과, “회사”(강조 또 강조)와 투쟁한 끝에 나온다는 걸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글을 쉽게 쓰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직업에는 그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우리 인간은 ‘배려’라는 것을 통해 상대방을 존중한다.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글쟁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웃스탠딩과 같은 독자를 위한 뉴미디어 매체를 응원한다. 화이팅 :)



Samantha
Samantha 7년차 글쟁이. 경제지와 뉴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 IT 기업에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쓰고 있다. 취미로 생산성 앱을 활용한 글쓰기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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