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짧지만 길었던 육아휴직 동안, 나는 정원 클래스에 즐겨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수업이 있었다.
평일 오전 수업이라 그런지, 젊은 여성보다는 우리 엄마 또래의 여성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있던 분이 “이렇게 손이 작아서 되겠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며 자연스럽게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예전에 비슷한 수업을 들었는데 이끼를 듬뿍 넣어야 뿌리가 쉬이 마르지 않는다며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결국 완성한 화분을 보더니 “아주 예쁘게 잘 만들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다른 분은 조금 달랐다. 만드는 내내 이건 별로고, 저건 낫지 않겠느냐는 말이 이어졌다. 조언이라기보다는 평가에 가까웠다. 그러다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결과물을 모아 사진을 찍는 시간이 왔을 때였다. 다 비슷비슷한 화분 사이에서 나는 내 것을 구분하려고 앞쪽 코너에 두었다. 그 순간 그분이 내 화분을 집어 들더니 “이건 안 예쁘잖아요”라며 뒤쪽으로 옮기고, 자신의 것을 그 자리에 두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날은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옆자리 어르신의 오지랖은 정말 좋아서 또 만나고 싶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되, 그 과정에서 판단이나 자기 기준을 들이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앞자리 사람은 이런 곳에서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볼 일도 없고, 굳이 관계를 이어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하지 않다. 피할 수 없는 자리에서 앞자리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제일 큰 고통이다. 이를테면 같은 팀으로 엮일 때처럼 말이다.
나는 어느 회사에 신입 공채로 들어갔다. 믿고 따르던 사수가 퇴사한 뒤, 팀에 경력직 선배들이 새로 합류했다. 선배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이미 나름의 증명을 해보인 나라는 존재는 꽤 눈엣가시였던 것 같다. 선배들은 내가 현장을 뛰기보다는 PC 앞에 앉아 이슈를 팔로업하고 보도자료를 처리하길 바라는 듯했다. 막내이다 보니 데스크에게 바로 이야기하는 것도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는 사이 기사에는 점점 그들 논리가 덧씌워졌고, 출입처도 제한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생각의 폭은 눈에 띄게 좁아졌다. 회사 방향에 맞춰 기사를 써내며 나름 인정받고 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낀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나에게만 그랬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후배들에게도 비슷한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을 받은 후배를 비꼬듯 대했다는 이야기, 데스크와 합의를 거쳐 쓰고 있던 기사에 끼어들어 “그게 기사냐”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다. 후배를 격려하기보다는 위축시키는 쪽에 가까웠다는 증언들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마주했다. 예전 동료들의 입에서 내가 겪었던 사람과 닮은 유형을 같은 팀에서 만나 결국 병을 얻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일을 잘하고, 더 잘해내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직접 겪었고, 또 수없이 전해 들었다. 차라리 일을 덜 하겠다고 꼼수를 부리다 보복을 당한 거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조직을 떠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절반이 넘는 직장인이 결국 퇴사를 선택한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정원 수업에서 만났던 앞자리 같은 사람 때문에 내가 오랫동안 몸담아온 조직을 먼저 떠나는 선택이 과연 유일한 답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를 붙잡아주려 했던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부장도 그랬고, 내가 겪은 일이 전부 내 문제는 아니라며 말해준 선배들도 있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있던 팀을 떠나 그들과 함께 일을 했더라도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조직에서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떠난 거였다면, 지금처럼 이런 생각이 남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조직 안에 있다면, 그 가능성부터 먼저 들여다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들과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내가 자기효능감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순간은,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며 각자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었을 때였다. 정원 수업에서 만났던 옆자리 어르신 같은 사람과 팀을 이뤄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직에 머무를 이유는 충분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글쓰기를 목표로 삼지 않은 선택이 야기한 우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