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이성적 호감'이라는 착각

1.”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오는 에스메랄다가 신부인 클로드에게 한 말이다.

(1) 춤추는 에스메랄다를 보고 첫눈에 반한 클로드.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신부)으로는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 에스메랄다를 자신을 유혹한 ‘마녀’라고 주장하며,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마음을 조정했다고 치부한다. 그러다 에스메랄다가 파리의 헌병대장인 페뷔스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질투한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클로드는 결국 페뷔스에 상해를 입힌다. 그 죄를 에스메랄다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덤이다.

(2) 이윽고 극 중에서 에스메랄다를 향해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혼자 제멋대로 에스메랄다를 향한 사랑을 키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상대에 죄를 뒤집어씌웠던 클로드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면 감옥에서 풀어주겠다고 협박한다. 자신을 증오할 거라 생갔했던 클로드의 고백에 에스메랄다는 당황했다. 한 번도 교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에스메랄다는 자신에 누명을 씌운 클로드를 격렬하게 거절한다. 그러자 클로드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탈출한 에스메랄다를 잡아다 교수형을 선고한다.


2.지난 금요일(7월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뮤지컬 공연을 관람했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여자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규정하는 이 신부의 사고방식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1) 20대 초반의 일이다. 개발/기획 관련 아카데미에서 만난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남자 한 분이 있었다. 반 사람들과 다 함께 밥 먹고 커피를 마신 게 전부였는데, 스터디 이후 “내 여자친구 될 생각 없니?”라는 문자를 내게 보냈다.

(2) 역시 20대 초반의 일이다. 영화 커뮤니티에서 초대권을 양도하거나 양도받는 일이 흔하다. 영화를 좋아했던 나도 그런 수혜를 누리기도 했고, 타인과 나누기도 했다. 어떤 분과도 그렇게 영화 티켓 1개를 나눠 가졌다. 영화가 끝나니 10시 30분이 넘었는데 커피 한 잔 마시자는 걸 거절하고 왔다. 그분 역시 문자로 다짜고짜 “여자친구 할 생각 없어요?”라고 했다. 내 나이 21살, 그분 나이 34살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3)2015년의 일. 영어 스터디 리더를 맡았는데 못 나올 일이 있을 때마다 다른 리더에게 부탁을 했다. 그저 부탁을 위해 카톡 대화를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그 뒤로 카톡 음성 녹음을 남겨놓고, 스터디 자리에 와서 수시로 말을 걸었다. 다른 스터디원도 “저 사람 왜 저래요?”라고 할 정도였다. 몇 년 뒤 자신을 기억하느냐며 카톡을 보내왔다.


3.위 건 말고도 많다. 요지는, 일부는 여자와 심리적으로 친해지기도 전부터 이성 교제를 전제로 한 만남을 기대한다는 거다. 의례적인 웃음과 대화일 뿐이었는데, ‘저 여자가 날 좋아하는구나’ 혹은 ‘저 여자가 날 유혹하는구나’라고 지레짐작해서 넘어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상대가 여자면 무조건 이성적 만남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그래서 아마도 제 나이 또래 여자와 데이트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참 어린 여자애한테 여자친구가 되어달라고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성적으로 호감이 간다.”고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저 여자가 날 보며 웃는 거 보니, 날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라고 지레짐작을 하는 거다.


4.어쨌거나 다른 여자친구와 대화를 나눠보면, 이런 사람을 만나봤다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웃고, 이야기했을 뿐인데 오해를 샀다. 네가 웃어줬잖아, 네가 내 눈을 보며 이야기했잖아, 네가 내 어깨를 이렇게 쳤잖아. 진짜 여자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자신의 마음을 뺏긴 것에 대한 귀책 사유를 여자에게 묻고 있어서다. 연애 잘하는 남자나 여자를 보면 “네가 날 보며 웃는 모습이 참 예뻤어(멋졌어). 그래서 널 이성적으로 느꼈어”라고 말한다. 절대로 남 탓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건 능동의 영역이지, 수동의 영역이 아니다.


5.클로드의 화법을 보면서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외모 때문에 에스메랄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콰지모도는 안쓰러웠고, 약혼녀를 두고 바람을 피운 페뷔스의 악랄함에는 치를 떨었다. 에스메랄다는 그저 아름다웠을 뿐인데 그녀를 두고 너무나 많은 남자가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을 보자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요즘 여자분들도 좋은 걸 싫다고 하진 않는다. 좋은 걸 좋다고 하고 싫은 건 싫다고 한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가 쟁취하는 거다.



Feature image by 뮤지컬 노트르담드 파리 홈페이지




Samantha
Samantha 7년차 글쟁이. 경제지와 뉴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 IT 기업에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쓰고 있다. 취미로 생산성 앱을 활용한 글쓰기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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