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달자, 좋은 창조자

과거, 하루살이 인생을 살았다. 오늘은 카카오를 보다가도 내일은 네이버를 보고, 내일모레는 게임사, 나흘째는 스타트업 이런 식이다.

한 분야만 깊이 파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는 않았다. 내 절대적인 시간을 투입하기 어려운 한계가 가장 큰 이유였다. 하나의 키워드를 내세운 야마(주제)의 기사를 쓰기 위해 투자하는 ‘하루’의 시간조차 모자랐다.

IT산업을 구성하는 여러 분야나 기술, 서비스, 기업을 두루두루 조망해야 기자로서 큰 그림을 볼 수 있다는 명분은 또 다른 이유였다.

마지막 세 번째는 IT기업 출입기자로서 쓸 수 있는 기사 아이템을 한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자체. IT기업의 기술,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써나가고 싶었지만 서비스나 기술, 본연의 가치와 원리를 깊이 있게 다루고 싶었다. 그러나 기업 매출, 인사 이동, 투자에 관한 기사를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귀 닳도록 들었다. 이윤을 내는 기업을 분석하는 기사가 더 높은 가치를 받았다. 기업→서비스→기술로, 점차 더 작은 범위의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던 이유다.


이런 한계는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더 파고들고 싶은데, 더 알고 싶은데, 그 마음을 언제나 절제해야 했다. 좋아하는 걸 잘하고 싶었고 잘하는 걸 거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으나, 이런 이유로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스타트업 기사도 그렇고, 카카오 기사도 그렇고, P2P 투자 기사도 그랬다. 심지어 카카오 기사 좀 그만 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더는 그러질 못했다. 서비스의 부속품처럼 기술을 한 줄 소개하고 말 수밖에 없는 부분에서도 크나큰 아쉬움을 느꼈다.

기업 매출이나 사업 전략보다는, 기술이 강조되는 콘텐츠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흘러넘쳤다(물론 그외 다른 부수적인 요인들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이슈를 쫓는 글이 아닌, 사람들이 궁금해할 가치가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글. 그러려면 아울러 특정 사안에 대해 스스로 질의문을 만들 정도의, 충분히 공부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이런 기회를 안겨준 곳이 바로 아웃스탠딩이었다. 비록 6개월이라는 짧고 짧은 시간을 머문 곳이지만, 그곳에서는 20대 통틀어 가장 빛났고,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좋은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공부했고, 쓰고, 또 공부했다. 정말 그때는 그랬다.

물론 아웃스탠딩에서 조차 앞서 언급한 모든 고민을 해결하진 못했다.

인공지능, 생산성, P2P, 스타트업이라는, 이전보다는 더 ‘좁은’ 범위를 취재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비슷한 고민은 지속됐다. 계속 생각하고 계속 보다 보면 끝이 없는 게 리서치(미디어 판에서는 이를 ‘취재’라고 부르기도 한다)다. 여전히 하루 취재하고, 하루 글 쓰는 행위를 통해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게 여전히 많지 않았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곧 답을 찾았다. 내 ‘업’이 가진 한계가 문제였다. 이슈를 빠르게 전달하는 기자 일 자체가 내 천성과 들어맞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다.

기술 자료를 보고 스스로 이해하는 데 크나큰 어려움을 느꼈다. 사실 사업이나 서비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았다. 관련 사업을 담당하거나 진행하는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잘 정리하면 됐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일단 현업에서 인공지능을 연구/개발하는 사람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 수많은 인공지능 관련 기사나 기술 블로그를 보자니, 스스로 관련 기술을 잘 이해하고, 잘 전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그럴 지능이었다면 이미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점점 더 기술집약적인 이야기를 쓸수록, 기술 원리에 관한 이야기를 쓸수록 이러한 경향은 짙어졌다. 텍스트만 읽고 외운다고 해서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아는 체를 할 뿐이다. 취재 경력으로 무엇인가를 안다고 하기엔, 그 민낯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이미 일어난 현상을 글로 정리하는 일에서는 온전히 나만의 거라 주장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인공지능 카테고리를 취재할수록 가까이서 보고, 듣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카카오브레인에서 기술 콘텐츠 등을 제작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막상 본진으로 들어와 보니 지금까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지도 않았다. 가까이서 이들과 직접적인 교류하면 인공지능, 머신러닝, 딥러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오만이었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지도 않고,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이전 상황과 여전히 같았다. 고민이 생겼다. “이 틈을 도대체 어떻게 메꿔나가야 할까”

반년 가량 생각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타협점을 찾았다. 예전 기자 생활 했던 때처럼 질문지를 쓰고, 그에 대한 답변을 받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기술을 직접 만져보고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관점이라면 스스로 노력해서 결실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혼자 기술 논문을 읽어나가는 것은 연구원들과 비교하면 뱁새가 황새 쫓는 꼴이라, 포기했다. 대신, 이들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걸 택했다. 실제로 이들의 설명을 한 번이라도 듣고 나면, 관련 문서를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게 AI 리포트의 ‘brain’s pick’ 섹션이다. 인공지능에 대해 더욱 정확하고, 쉽게 이야기해줄 조언자를 곁에 둘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고민을 해결했다고 결론지었다.

기술을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내고 나니, 이제 내가 해결해야 할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바로, 콘텐츠의 구성 방식에 대해서다. 기술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는 만큼, 콘텐츠 완성도에 조금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게 됐다. 마치 뼈대(기술)에 살(스토리)을 덧대어가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잘 전달하고 싶은 부분은 공상과학적 상상을 윤리적으로 들여다보기다. 이 또한 전세계 내로라하는 윤리학자들의 멘트, 인사이트를 간추려서 하나의 주제로 엮어서 전달하는 것이 과제다. 인공지능 기술 사회가 도래했을 때 우리 인간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로 인해 발생할 윤리적인 문제가 없을지 지금부터 고찰해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탄생한 게 AI 리포트의 ‘pop culture in AI’다. 여러 주장을 하나의 주제로 엮기 위한 수단을 늘리고자 책도 읽고, 영화도 본다. 꼭 인공지능이 주제인 작품이 아니더라도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작품도 섭렵한다. “나중에 기계가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인간’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 못 하는 영역이 더 많다.


여전히 한계는 있다. 연구개발을 하는 게 아니라면, 인공지능 (콘텐츠) 분야에서 좋은 전달자가 될 수는 있어도, 좋은 창조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계속 욕심내는 분야가 바로 생산성이다.

생산성은 내가 일을 하면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자, 연구이다. 타인의 인사이트를 빌려오지 않아도 된다. 논문을 굳이 읽어내려가며 남의 지식을 습득하지 않아도 된다. 단편 아이디어를 하나의 완성된 글로 표현하는 과정을 정제하는 일은, 내게는 곧 실험과도 같다. 반복된 실험(글쓰기)을 통해 내 것을 만들어가는 재미를 생산성으로부터 느껴보려고 한다. 사실 인공지능에 관한 글쓰기와도 유관하다. 이 (직업적)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환경적 토대를 쌓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인공지능 영역에선 좋은 전달자가 되고, 생산성 영역에선 좋은 창조자가 되는 걸 목표로 삼고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글을 쓴다.


Feature image by Yerson Retamal from Pixabay



Samantha
Samantha 7년차 글쟁이. 경제지와 뉴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 IT 기업에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쓰고 있다. 취미로 생산성 앱을 활용한 글쓰기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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