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사랑, 판타지의 사랑, 욕망의 사랑에 관한 작품
주말에 무엇을 할까 고민해본 지도 오래다. 넷플릭스와 리디북스 혹은 서점에서 사 온 중고 책이면 주말 내내 작품 속 세계에 푹 빠지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이번 주는 어쩌다 사랑에 관한 서로 다른 3가지 작품을 즐겼다.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본 넷플릭스의 영화 ‘대체불가 당신’, 그리고 ‘마담 보바리’다.
우리는 사랑일까
‘우리는 사랑일까’는 환상 속의 황홀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던 앨리스가 에릭과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 되고 결국 헤어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상세히 기술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에릭은 앨리스를 소홀하게 대한다. 에릭의 배려가 없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도 앨리스는 많은 걸 양보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앨리스는 이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어느 날, 앨리스는 필립이라는 사람과 엔티크 가구를 보러 다니면서 친분을 쌓게 된다. 필립과 함께할 때 늘 질문하는 쪽이었던 앨리스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걸 깨닫는다. 도통 에릭과의 대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흥을 필립으로부터 느끼게 된 앨리스는 에릭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점차 식는 걸 깨닫는다. 한편 에릭은 앨리스가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100중 80의 노력을 해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앨리스는 더는 노력하는 게 부질없다고 말하며 이별을 통보한다.
보통의 여자라면 그랬을 것처럼, 나 또한 앨리스에 감정을 이입하며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권력 관계에서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는,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쳤다. 그리고 사랑은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쪽은 언젠가 이별을 통보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사랑에 한순간에 빠지는 이유도, 더는 사랑하지 않는 이유가 같다는 건 아이러니한 포인트다. 내가 기대하는 상대방의 모습에 사랑에 빠지고, 그 기대감이란 게 내가 덧씌운 환상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사랑이 식는다. 앨리스는 끊임없이 이런 사람과 연애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다는 걸 추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닮은, 자신과 잘 통하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알 것만 같은 새로운 사랑인 필립과 재회한다.
대체불가 당신
두 번째 작품 ‘대체불가 당신’에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속삭여온 커플에 관한 이야기다. 영원할 것 같던 이들의 사랑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손꼽아 기다려왔던 결혼식을 앞두고 산산조각 깨질 위기에 처한다. 애비가 말기암 진단을 받고 난 직후부터다. 평생 자신을 ‘짝’으로 여겨온 샘을 두고 떠나는 게 내심 마음에 걸렸던 애비는 샘을 위해 새 짝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
다소 판타지를 본다는 듯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즐겼던 것 같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사랑이 결실(결혼)까지 보게 된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스토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 달 수 있는 코멘트는 사실 많지 않다. 사실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순수한 사랑도 죽음에 의해 깨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랬다면 누가 대본을 썼는지 몰라도, 참 고약하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자친구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의 숭고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시각도 참 고약하다. 여러모로 작품 의도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다.
보바리 부인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은 ‘우리는 사랑일까’에 자주 언급된 보바리 부인에 관한 이야기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엠마는 수녀원 학교에 다니다가 쫓겨난다. 연애 소설과 같은 책을 훔쳐보다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던 엠마는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의사와 결혼한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시골 마을에서의 결혼생활이 지루하던 엠마는 사교 파티에 눈을 띄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바람둥이 루돌프를 만나 격정적(?)으로 바람을 피운다. 시골 생활에 질린 엠마가 같이 도망가자고 제안하자 루돌프는 혼자 다른 도시로 떠나고, 슬픔에 빠진 엠마 앞에 젊은 청년 레옹이 나타난다. 레옹과도 뜨거운 사랑에 빠진 엠마. 그러나 엠마의 사치 생활로 큰 빚이 생겨나면서 엠마는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루돌프와 레옹 모두 정작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내빼기 급급한 모습을 보며 실망한 엠마는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총평
‘우리는 사랑일까’는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사람들의 연애와 새로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서 현실적이었다면, ‘대체불가 당신’은 어차피 동화 속 사랑과 같은 이야기라서 비현실적이었다. ‘마담 보바리’는 물질의 욕망, 사랑의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그 늪에 빠져 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터라 마냥 가볍게 볼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 엠마의 잘못이 가장 크다. 한눈팔지 않지, 의사로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지, 식사도 같이하지, 밤에는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남편에 만족하지 못했다. 아울러 의사 월급에 걸맞게 살림을 꾸려나갔어야 했음에도 불구, 장사치의 세 치 혀에 넘어가 분수에 맞지 않은 물건을 외상으로 사들이며 사치를 부린다. 세상 물정을 모른 엠마를 꼬드긴 남자에게도 잘못이 아예 없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룻밤의 즐거움이 사랑의 즐거움,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이어지는 사례를 거의 보지 못했다. 육체만 탐하는 관계는 언젠가는 파국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이 세 작품을 보고 나니 사랑을 시작하기가 두려워졌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다. 그래서 동화처럼 너와 나만 바라보는 사랑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겠다 싶다. 육체적 욕망을 충족하실 원하는 개떼 같은 남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지 않아야 하는데 뜻대로 될지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