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기묘여행'을 보고 나서
‘기묘여행’이라는 연극을 봤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3년 전, 열다섯 살이던 카오루는 살해당했다. 카오루를 살해한 아쯔시는 사형을 언도받고 항소를 포기하려 한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딸을 죽인 살해범을 직접 죽이기 위해 살인 도구를 가득 담은 가방을 준비한다. 아쯔시의 부모는 아들이 항소해서 사형만은 면하기를 바란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들은 아쯔시를 면회하고자 1박 2일간의 기묘한 여정을 함께 한다.
출처 : 인터파크
1.10대 소녀인 ‘카오루’도 무대 내내 등장한다. 부모 눈에 보이지 않은 영혼의 형태다. 카오루의 아버지와 내적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역할을 한다. 극 초반에는 몰입에 방해되는 존재였다. 남겨진 자(살인자, 살인자의 부모, 피해자의 부모)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카오루의 아버지는 여러 이유로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을 죽이지 못한다. 자기 대신 복수를 해준다던 아버지를 두고 카오루는 괴로움을 표한다. 카오루가 “잠을 자지 못하는 아빠와 움직일 수 없는 나, 둘 중에 누가 더 안 좋아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너, 너지”라고 답한다. 어떻게 됐던 간에 살인의 대상일 수밖에 없던 당사자가 제일 괴로울 일이다.
3.카오루는 살인을 당하던 당시 자신의 괴로움을 이야기한다. “이상했어요.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 나한테 따뜻한 물을 끼얹은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배에, 피가 가득 차올랐어요. 그리고 정말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죽이지 말아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를 죽여주지 말아 주세요!!”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는 카오루를 보며 수많은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느꼈을 극심한 공포심과 고통이 연상됐다.
4.카오루가 그렇게 무참히 죽고 난 뒤, 그의 가족은 사는 것 같은 삶을 살지 못했다. 카오루 부모는 3년 만에, 드디어 살인자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카오루의 환청을 들은 카오루 엄마는 살인자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카오루를 제발, 살려주세요. 카오루를 다시 데려와 주세요. 카오루가 보고 싶어요. 카오루를 제발 다시 데려오란 말이야!!” 피해자 가족이 지금도 간절하게 원하고 있을, 그리고 이뤄지지 못할 외침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5.카오루를 잃은 그의 부모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던 아쯔시의 어머니. 아들이 자행한 살인으로 인해 아쯔시의 부모는 허리를 구부리며 잘못했다고 연신 외친다. 진심으로 잘못을 구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늘날 살인자의 부모들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오늘도 실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6.기묘여행을 주선했던 테라하라의 요구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는 각각 인형을 만들어 간다. “이 칼로 아쯔시라고 이름을 붙인 인형을 찌르세요”라는 말을 듣고 카오루의 아버지는 인형을 찌른다. 칼로 인형을 차마 찌를 수 없다는 카오루의 어머니를 대신해 아쯔시의 어머니가 칼로 인형을 난도질한다. 인형을 난도질하는 모습에 움찔했다. 사람을 찌르기 위해 칼을 쥐는 손 모양에서 두려움을 느껴서다. 카오루 아버지는 “나는 엄청난 살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아쯔시를 정말 죽이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죽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며 독백한다. 사람이라면 살의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게 당연지사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살인을 저지른다.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7.그렇다면 과연 사형만이 답일까. 테라하라는 교도소에서 사형집행을 담당한다. “저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다고요!”라고 괴로워하는 그는 자신이 아쯔시와 다를 게 무엇이냐며 반문한다. 사형제도로 인해 생겨나는 부작용 중 하나다. 피해자 부모에게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일이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죽음’으로 묻는다고 해서 죽은 카오루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다. 하지만 극중에서처럼 살인이라는 행위가 일어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분명한 건, 현행의 사법 시스템에서는 그 누구도 충분하게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쉽게 회개라는 걸 할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