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쉽게 써야 하는 이유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9화 중 감명깊게 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병원에 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외과 레지턴트인 장겨울 선생이 보호자에게 수술 내용을 설명합니다.

장겨울 : 총담관 낭종은 총담관이 낭성으로 학장돼서 기능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담관 담석증 또는 담관암 등이 발생할 수 있는 병이고요. 수술은 낭성으로 확장된 총담관 낭종을 절제하고 루앙와이 담관, 공장 문합 수술을 통해 담도를 재건해 줄 겁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안정원 교수가 와서 환자 보호자에게 좀 더 쉬운 언어로 이 상황을 설명합니다.

안정원 : 재원이 어려운 수술 아니고요. 간에서 담즙이라는 게 만들어지는데 이게 기름기를 소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소화액이에요. 담즙이 만들어지면 장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그 이동하는 길이 총담관이에요. 보통은 아이들이 총담관이 5mm가 채 안 되는데 재원이는 3cm가 넘게 늘어나 있어요. 이게 늘어나게 되면은 담즙이 잘 안빠지고 고여서 돌이 생긴다든지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 늘어난 총담관을 잘라 내는 게 오늘 재원이가 받게 될 수술이에요. 물론 잘라낸 뒤에도 담즙이 내려가는 길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소장의 일부를 담도랑 다시 연결해 줘야 돼요. 그렇게 연결까지만 하면 수술이 완료되는 겁니다. 뭐 엄청 복잡하고 힘든 수술 아니니까 걱정 많이 안하셔도 돼요.

몇 시간 후, 보호자가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안정원) 선생님이 하신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장겨울 선생에게 아이가 받은 수술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보호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게 설명하던 안 교수의 모습을 지켜보던 장겨울 선생은 펜과 종이로 수술 부위를 직접 그려가며 보호자에게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이와는 상반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극 중에서 악인으로 나오는 흉부외과 천명태 교수가 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관련 논문을 봤어요.”라는 환자의 보호자에게 “당신이 의사세요? 그렇게 잘 알면 굳이 먼걸음하지 말고 집 근처 가까운 병원 가세요”라고 면박을 주기 일쑤죠.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이 많은 대중을 위한 글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해 동안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영어) 논문에 기술 구현 방법이 다 설명돼 있다. 굳이 이걸 또 쉽게 풀어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사실 많이 들었고요. 하지만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 산업과 관련해 다양한 업(비즈니스 의사 결정자, 기술기획자, 디자이너, 마케터, 에디터, 영업 담당자 등)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준에 맞춘 콘텐츠 또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청중에 따라 같은 내용 또는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은 바뀌어야 합니다. 앞에서 본 장면에서처럼 분명 조금 더 쉽고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결론을 도출했기에, 인공지능 개발자와 엔지니어와 어떻게 하면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긴밀한 협업 하에 라이터가 제것으로 소화한 내용을 쉽고, 간단하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Feature image by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Samantha
Samantha 7년차 글쟁이. 경제지와 뉴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 IT 기업에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쓰고 있다. 취미로 생산성 앱을 활용한 글쓰기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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