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품격
재개봉한 영화 ‘위대한 쇼맨’을 봤다. 극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인 ‘품위있는 예술과 품위없는 광대 놀이’에 관한 꼬리에 무는 생각을 거듭했다. 궁극에는 ‘글’에 대해 말했던 사람들의 몇몇 말까지 떠올렸다.
- 기사는 고등학교도 졸업한 사람도 읽을 수 있게 쉽게 써야해.
- 취재 활동 해봤자 효율적으로 콘텐츠 못씁니다. 번역 업무 하시죠.
- 사람들은 기술 기사를 안봐.
- 기사는 홍보인들 보라고 쓰는 거다. 어떻게든 조아리게 만드는 게 기자의 일이야.
- 에버노트 글 썼던 것처럼 인사이트있는 글만 써주세요. 이건 무슨 광고 글 같네요.
- 너는 현장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글을 써줬으면 좋겠어.
- 너는 책상에 앉아서 내가 시키는 대로 글을 써.
- 어차피 사람들은 영어 논문을 볼텐데 이런 블로그 왜써요?
- 너는 어떤 사건을 과거에서 현재까지 잘 정리하는 거 같아. 그 특기를 살리면 참 좋을 거 같아.
- 일반 대중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인공지능 글 좀 써주세요.
- 전문가들도 볼 글이니까 틀린 표현 쓰지 마세요. 전문 용어 쓰세요.
- 수경님의 통찰력이 좋아요. 그런 걸 담은 글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각자가 중시하는대로, 혹은 각자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더 요구하거나 또는 나를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써 이야기를 하든 뭐든 다 달랐다. 말을 정리해보고 나니, 누구의 입맛대로 글을 쓴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다른 가치관으로 글을 대하는 만큼 모두를 만족하는 글은 존재하지 않겠다 싶었다. 각자가 생각하는대로,
영화에 등장하는 평론가는 쇼맨(휴 잭맨)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당신의 쇼가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쇼를 보고 즐거워하고 있죠. 아마 제가 아닌 다른 평론가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에요. 평등한 인류애를 실현했다고.”
이 말을 곰곰이 되새김질해봤다. 아마 앞으로도 어떻게 하든 글의 품위와 방향성과 형식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의사와는 별개로 끊임없이 들을 테니 이에 의연해지자는 게 결론이다. 다만, 품위있는 예술이냐, 품위없는 광대놀이냐는 격식만 따져대기 보다는 글을 통해 전달하려는 가치에 충실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싶었다.
영화 감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