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말해준 나의 글쓰기 강점과 약점

1.해외 기사를 번역하거나 문서를 편집하는 수준을 넘어서, 현장을 취재해서 기사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퇴근 후 카페에서 스터디를 하며 몇 개월을 준비한 끝에 한 매체에서 수습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스타트업 쪽에서 잠시 일을 했다가, IT매체 인턴 기자와 에디터를 거쳐온 나의 이력을 본 데스크의 입김과 나의 의지 덕분에 산업부 IT팀에 배치됐다. 당시 27살이었던 나는 한 살 터울의 선배를 만나게 됐다. 오늘 내가 말할 사람은 바로 이 사수 선배다.


2.6년, 7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미숙했던 ‘어른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주는 영웅 오라버니와 대연님 그리고 지송 오빠, 카엔에서 함께 글쓰기 작업을 하며 친해져서 서로의 행보를 응원하게 된 케빈, 회사 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맛난 걸 사주며 힘내라고 해주는 이은솔 대표님, 그리고 항상 내 옆에 있어주는 남자친구 등사회에서 만나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선배하고는 5개월 남짓 같이 일한 게 전부다. 그런데 여전히 내 사수였던 선배에게 향수를 느끼는 이유는,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이자, 콘텐츠 창작자로서 나의 장단점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 그런 듯하다.


3.데스크-부장-팀장-사수-막내 순으로 계급이 명확하게 나눠진 그 사회에서 나는 ‘쉐뱅이’, 선배는 ‘받데기’였다. 입사한 지 만 1년이 된 선배는 자기 앞가림도 하기 바쁜 와중에 막내를 챙기는 일이 큰 짐으로 느꼈을 거다. 나라도 그랬을 거 같다. “선배들 카톡에 바로 답장하자”, “ 인사 잘하고 다녀야 한다”, “일이 중첩되고 오더가 하달되면 부장 팀장이 먼저 시킨 거 해라”는 말을 꽤 자주 했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선배가 말은 다 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나의 행동이 문제라고 생각한 다른 선배들이 사수 선배에게 왕왕 한소리를 했던 거 같다. 막내가 잘못하면 바로 그 윗 선배가 털리기 때문이다.


4.업계가 보는 글이 좋은 기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기자이기 전에 회사원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 글을 가장 보는 사람이 사수-팀장-부장-데스크부터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기사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부터 먼저 인정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어쩌면 내가 원하는 기사를 충분히 썼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 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읽는 데 대단히 서툴렀다. 내가 맞다고 판단하는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증명과 설득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잘 알지만, 그때는 그런 요령을 피우질 못했다.


5.그런 사수 선배로 이런 게 염려가 됐는지 “인간관계 회의감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살아남으려면 정치를 해야 한다”, “사람 마음을 얻는 걸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말했다. 그때는 완결성이 높은 글을 쓰느라 정신없어서 주변을 널리 보지 못했다.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지금은, 신기하게도 그 수 많은 연구원 중 누가 어떤 논문을 썼고, 어떤 연구 계획을 세우고 있고, 어느 파트 소속이고, 누가 누구랑 친하고, 언제 우리 회사에 왔는지 등 사람에 관한 정보는 자연스럽게 외우고 있다. 그리고 연구원 또는 개발자로부터 호감을 얻을 커뮤니케이션 스킬 셋을 스스로 개발해나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스킬셋은 연차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쌓이는 거라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6.선배는 “카드 뉴스 굿이다. 역시 센스가 넘친다”, “네가 가진 장점은 정말 엄청나다. 너가 잘하는 분야에서는 너가 최고다”, “너가 너무 잘하고 있어서 (내) 기분이 정말 좋다”라는 식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도 선배는 “넌 나의 자랑이란다. 비록 나랑 성향이 극명하게 다르지만 너랑 성향이 극명하게 달라서 난 너랑 일할 때 재미있었다”, “남한테 너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자부심 갖고 일해라. 넌 짱이다”, “네트워크가 너의 최대 강점이다. 사람 최대한 많이 만나라. 사적인 모임 이런 거 더 만들고 최대한 판을 펼쳐라”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7.그러면서도 선배는 나의 약점에 대한 지적과 기자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선배는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커버쳐주겠지만, 그래도 혼자 이름 (달고) 나가는 건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도 절대 자만하지 말고 수습 한 달 차라는 걸 잊지 말아라”, “(기사로) 카카오 흔들었는데 저건 또 왜 저렇게 썼냐는 말을 듣지 말아야지. 다른 기자들이 저렇게 썼어도 넌 그러지 마라”, “분석하는 습관을 기르자”, “양발잡이가 되어야지. 절름발이가 되지 마라. 한쪽을 잘하는 사람보다 여러모로 쓰임새 있는 사람을 조직은 필요로 한다”, “무엇이 보이는 거 같으면 뒤로 물러서서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두리번두리번 해봐. 넌 뭐가 보이면 막 거기만 파고든다. 그게 장점이면서도 단점이 될 수가 있다”, “너의 감정을 숨겨라. 다 드러내지 말자. 너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자”는 식이다.


8.그때 당시에는 선배의 말에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고, 선배는 날 잘 모르고 하는 바보 같은 소리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배가 해준 말이 약점은 개선하면서, 강점은 늘리면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지금도 내가 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게 다 옳고 세상이 틀렸다는 어리석은 주장만 펼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한가지 깊게 파고드는 성향은 내가 어찌할 도리는 아닌 거 같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글은 독자의 시간만 낭비하는 쓰레기라고 보는 신조 때문인 듯하다.


9.아무튼 이 이야기의 결론은, 선배가 부대표로 있는 매체인 techM에 에세이를 기고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인공지능 이야기 말고,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 그리고 세상을 보는 나만의 시각을 담아내고자 한다.




Samantha
Samantha 7년차 글쟁이. 경제지와 뉴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 IT 기업에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쓰고 있다. 취미로 생산성 앱을 활용한 글쓰기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