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을 타파하려는 용기

1.가끔은 이런 꿈을 꾼다.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하는 내용이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당장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사람부터 내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게 사측의 요지였다. 사람들은 흔히 현실 속 불안감을 반영하는 매개체가 바로 꿈이라고 한다. 따라서 어쩌면 이 꿈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은 곳에 있겠다고 억지를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잠재 의식을 투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애초에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내 신조를 밀어붙였다. 에디터, 기자, 작가와 같이 직업의 형태가 내게는 크게 중요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사회적인 인식이 (그 시절에는 그나마) 호의적이면서도, 그나마 안정적으로 월급이 들어오는 삶을 살려면 ‘기자’라는 타이틀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그 직업을 택한 것 뿐이었다. 어린시절 작게나마 가졌던 사회정의를 구현하면 좋겠다고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3.그러다가 기자도 기사를 쓰는 사람 이전에, 회사에서 자신의 몫을 해야만 하는 직장인임을 깨달으면서 나는 빨리 노선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때가 왔음을 느꼈다. 어느 날, 스타트업 대표 인터뷰 기사를 쓰려고 회사 측에서 보내준 회사 소개서와 수십 개가 넘는 업계 자료를 읽고 있었다. 문득 이렇게 한 개의 기사를 쓰기 위해 수십 시간을 투자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소속된 회사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건가?”싶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다 회사 구성원으로, 내가 다니는 회사를 위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4.밖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결과를 잘 가공한 텍스트만을 놓고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사과의 단면만 보고 사과를 묘사하는 게 영 찜찜했기 때문이다. 반면, 안에서는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내가 그토록 원했던, 실제 사실과 가까운 묘사를 해내는 데 충분한 시간은 물론, 충분한 고민을 거쳐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내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5.나는 회사의 엔지니어와 리서처와 한 편의 글을 완성할 때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 답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과제를 해결한다고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수천 번이 넘은 (실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하는 일보다는, 차라리 마감 기간 내로 어떻게든 글을 한편 써낼 수 있는 이 일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그들이 만들어내는 연구 또는 개발 성과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존경심을 글로 표현하고, 그 글을 통해 그들의 성과나 이름 석자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6.그런데 애초에 “사실에 입각하는 글쓰기”에 지나치게 매몰돼있나 싶은 고민도 있다. 특정 세그먼트 개발 또는 기획, 혹은 마케팅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민처럼, 나도 “이렇게 ‘특정 분야에 특화된 글’만 쓰다가 경쟁력을 잃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 또는 비슷한 직군이 없어서 더더욱 전전긍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한테 쉽게 대체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전문 분야를 택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데, ‘글쓰기’가 누군가에게는 참 쉽고 하찮은 일인 거 같아서 한편으로는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프다.


7.그렇게 자존감이 떨어지는 날이면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출근하는 날까지 두문불출하며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로 인해 위 내용처럼 쫓기거나, 쫓겨나거나, 조롱당하는 꿈을 꾸다가 깨고는 한다. 어쩌면 글쓰는 일을 포기하는 상황까지도 상상해본다. 글쓰는 이외의 삶은 내게 그저 사형 선고나 진배가 없음을, 아니 역시 글쓰는 일을 포기할 수 없겠다는, 답이 정해진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 혹은 글을 쓰는 이유를 곱씹어보게 된다.


8.그러다가 예전 일이 문득 생각났다. 2010년도 스마트폰 시장을 분석한 해외 기사가 하나 있었다. 심심하던 찰나 이 기사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올리면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싸이월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 다음 날 바로 블로그 섹션 메인에 글이 썼고 사람들은 “큰 도움이 됐다”며 댓글을 남겨줬다. 많은 매체에서 글을 썼을 때도, 그리고 기업에서 글을 썼을 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어쩌면 한결 같았다. “이런 정보를 잘 정리해줘서 고마워요.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게 대중과 ‘글’로 커뮤니케이션 할때 얻는 나의 자긍심이었구나, 나의 또다른 글쓰기 원동력이었구나 싶었다.


9.계속 침대에 누워있는 채 주말 내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니, 친구가 “넌 글을 쓸 때 제일 멋있어. 너에게는 글쓰기는 일이 아니라 그게 그냥 편안하게 쉬는 시간의 일부인 거 같아. 누워있지만 말고 제발 책상 앞에 가서 앉아. 제발”이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서 또 글을 썼다. 쓰고 나니 후련해진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스트레스가 날라감을 느낀다. 그리고 해방감을 느낀다. 기운이 솟는다. 심장이 뛴다. 이런데 어떻게 글을 안쓸 수가 있지? 안쓰는 선택을 할 수가 있지? 어디에 있든, 나는 꼭 글을 써야만 할 거 같다, 아니 꼭 글을 쓸 거다. 그게 내가 찾은 답이다.


Image by Sandy Müller from Pixabay



Samantha
Samantha 7년차 글쟁이. 경제지와 뉴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 IT 기업에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쓰고 있다. 취미로 생산성 앱을 활용한 글쓰기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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