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쓰든지, 응원하든지, 패스하든지

0.글쓰기는 정말 재밌다. 하지만 독자가 내게 들이대는 잣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면 회의가 들기도 한다. 몇 해 전 발생한 한 사건이 떠오른다. 배경은 다음과 같다.


1.기자와 에디터라는 신분으로 ‘펜’을 잡는 일을 하게 되자, 1)효율적으로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 2)효과적으로 글을 기획하는 방법에 관심이 자연스레 쏠렸다. 이는 곧 내 코너 신설로 이어지게 됐다. 주제는 “생산성 도구를 사용한 도큐멘테이션 방법론”이다.


2.2011년에 가입한 에버노트는 한창 쓰지 않다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오래전 가입했다가 포기했던 워크플로위도 2017년부터 애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당시 기사에서 다루던 앱 또는 서비스는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해본 경험을 갖추고 있다. 오랜 세월만큼 나만의 노하우가 하나씩 생겨나자, 이를 소재 삼아 칼럼 형식의 글을 원 없이 써댔다.


3.하지만 생각해보자. 하루에도 전세계적으로 여러 새로운 생산성 서비스가 탄생한다. 당연히 동시에 다 써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 단순 소개 기사만 써도 아이템이 넘쳐날 거다(그래서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대신 전하기도 한다.)


4.그러던 중에 새로운 생산성 앱을 하나 접했다. 솔직히 내 코너로 연재하기에는 앱 사용 기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 다만 토크콘서트 발표 때 사용해본 경험이 좋아서 이걸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면 좋은 정보가 될 거라는 가치 판단이 섰다. 단순 리뷰 형식의 글을 쓰기로 했다. 개발사 대표 인터뷰를 통해 쓰면서 아쉬웠던 점, 그리고 보완되면 좋은 점에 대한 업데이트 계획도 따로 남겼다.


5.마침 힘을 뺀 글을 쓰고 싶은 시기기도 했다. 그다음 주 토크콘서트 막바지 준비와 그 전날 기사 마무리에 심신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 그러니까 새벽에 잠자는 걸 포기하며 글을 써야 한다. 하지만 글쓰기를 평생 업으로 삼으려면 스스로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매일 밤을 새우다간 죽는다. 매일 힘주어 글을 쓰면 질려서 일을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러므로 매일, 평생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날은 힘주어 쓰고, 어떤 날은 힘 빼서 써야 한다. 한편, 그래야 작업 물량을 늘려 성공 타율도 높일 수 있다.


6.그렇게 쓴 글에는 이런 댓글이 하나 달렸다.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표현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명백히 틀린 정보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지 수용할 수 있다.

“이번 기사는 이수경 기자님의 다른 생산성 기사에 비해 좀 실망스럽네요. … 광고가 아닌걸 알지만 무지 광고 같은 글 같네요. … 좀 더 오랫동안 이 앱을 써보고 이 기사를 썼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냥 이건 블00나 아000 같은데 올라와야 더 적절한 기사같네요. 솔직히 기능적으로 보면 기존 서비스에서도 구현불가능 것도 아니거든요. 대표님 인터뷰도 좋은데 조금 더 현업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용례가 첨부되었으면 좋았을 거 같네요.”


7.하지만 에버노트나 워크플로위나 몇 년을 써보면서 획득한 나만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코너와의 별개의 리뷰 기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불만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솔직히, “날 어디까지 벗겨서 먹어야 속이 시원하나” 싶은 억울함을 가장 먼저 느꼈다.


8.물론 이는 역설적으로 저 사람이 내 칼럼형 글에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걸 나타내기도 한다. 기대치를 잔뜩 높여놓은 상황에서, 단순 리뷰의 글에 대한 실망이 컸을 거다. 그렇지만 그래도, 글 하나로 ‘적격성’을 운운하는 점이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 글을 봐주는 사람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지마는, 이를 권리로 휘두르는 사람을 포용해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9.그로부터 일 년 뒤, 리뷰왕 김리뷰는 리뷰 콘텐츠 작성 포기를 선언했다. 자신만의 글을 쓰겠다는 김리뷰에게 “변했다”, “고상한 글만 쓰겠다는 거냐”라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당장 밥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힘들다는 그에게 돌아오는 많은 부정적 반응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기시감을 느꼈다.


10.그 뒤로는 이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없다. 다행히 무엇을 쓰더라도 응원해주는 독자가 월등히 높았다. “수경님이 지금까지 썼던 글의 퀄리티를 믿고 결제한다”라는 말이 되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잘 부탁한다”라는 말에 사실 더 큰 자극을 받았다. 늘 언제나 하나라도 유용한 정보를 담기 위해 노력했고, 허투루 썼던 글이 없어서 나는 당당하다!


11.이제는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때에 써도 독자를 만들 수 있을지를 실험해보고 싶다. 글을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의 이야기와 생각, 고민을 담은 글도 봐줄지를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압박감을 조금은 덜어내고 싶다. 제대로 써야 한다는 부담도 덜고 싶다. 그저 잔잔한 글을 쓰고 싶다. 나다운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좋은 정보 공유해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보다는, “공감된다”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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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목은 테드 터너(Ted Turner), CNN 설립자가 한 말,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Lead, follow or get out of the way)”를 패러디했습니다.

2.Feature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Samantha
Samantha 7년차 글쟁이. 경제지와 뉴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 IT 기업에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쓰고 있다. 취미로 생산성 앱을 활용한 글쓰기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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