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회사에는 글만 쓸 줄 아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다
공대 출신으로 현재 기술 기업에서 AI 콘텐츠를 써온 내가 지금까지 함께 했던 리더의 백그라운드를 보면, 다음과 같다.
- 경제지 산업부 부장
- 뉴미디어 언론사 대표
- (공대 출신) 최고전략책임자
- (공대 출신) 최고운영책임자
- (공대 출신) 기술전략
사람마다 내게 내려지는 오더가 조금씩 달랐다. 경제지에 있을 때는 내가 담당한 회사의 재무 현황 파악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뉴미디어에 있을 때는 독자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파급력 있는 콘텐츠 제작 능력을 원했다. 아무래도 현장 취재 기자로 일해본 경험이 있던 분들이라 콘텐츠라는 프로덕트에 관해 여러모로 싱크업을 자주 맞췄던 듯하다.
그에 반면, 공대 출신의 리더와는 사뭇 다른 대화가 펼쳐진다. 사실 콘텐츠 자체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다른 팀 사람과 협업해서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충이나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또는, 각자가 갖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한 디렉팅이 일어나기도 한다. CSO하고는 아무래도 블로그 플랫폼 자체의 전략적 접근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거 같고, COO하고는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의 고민과 과정, 그 결과물을 모두 자산화하는 관점의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거 같다. 현재는 회사가 보유한 기술 자산의 파악과 문제 해결 관련 이야기를 아무래도 많이 나누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서, 점차 “테크 라이터”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양질의 콘텐츠 하나 생산하는 데 많은 공수가 드는 건 맞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테크 브랜딩과 리쿠르팅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걸 목격한 상황에서 참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콘텐츠 기획 및 제작 경력을 갖춘 사람이 기술직군의 리더로 올 가능성이 제로로 가까운 상황을 보자면, 아마 앞으로 글쓰기만 고수해서는 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은 안 될 거 같다.
사실 기술 회사에 오면서부터, 거의 매년 “사만다는 뭘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글은 회사 동료와 친해지는 수단, 회사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수단, 무엇인가를 아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를 뺀 나머지를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 질문에 나는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글 쓰는 데만 집중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실제로 내가 썼던 글에서 인간적 매력을 느꼈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아왔던 터가 더 좋은 글을 쓰는 노력을 포기할 수 없었기도 하다.
어쨌든, 기술 회사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글만 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듯하다. 글도 잘 쓰는 ‘무엇’이 되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기술을 잘 알거나 기술을 잘 알려는 노력이 기본 전제라면 난 어떤 부분에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포지셔닝을 취할 수 있을까? 또는 아마 글쓰기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비기술직군이 비슷한 어려움에 놓여있지 않을까 한다.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