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를 열려는 개발자와 소통하기

1.’가마니’처럼 가만히 있던 월요일 오후,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입사 동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각자가 하는 일도, 몸담은 최상위조직도 달라서 함께 온보딩을 받은 날 이후로는 따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던 탓인지 겸연쩍은 미소를 지은 그는 ‘세미나를 하려는데 도와달라’는 말을 건넸다.


2.몇날 몇시에 세미나를 열고 싶은지 물었다. 이런 세미나 발표로 나서는 건 처음 일이라며, 자기가 정해도 되냐고 되물었다. 발표자가 없는 발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가능한 일시를 공유해달라고 했다. 녹화가 필요한지 물었더니, 부끄러워서 꼭 필요할까 싶다고 했다. 녹화를 하지 않으니 내가 업무적으로 지원할 영역이 크지 않아 보였다. 세미나 공고 작성이 필요한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자신이 속한 팀에서 개발한 제품 관련 수많은 의문점을 해소하는 자리가 꼭 필요하기에 홍보는 많이 됐으면 좋겠단다. 영구 박제는 부담스럽지만, 많은 이가 봤으면 좋겠다는 소리다. 간단한 질의 과정 끝에, 이 동기가 필요로 하는 건 ‘매력적인 공고 작성 지원’이겠다 싶었다.


3.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 개발자인 동기로부터 회신이 왔다. 공고 작성에 필요해 보이는 내용을 일단 써보았으니, 잘 부탁한단다. 받은 내용을 보니 그대로를 공고문으로 내기는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작성에 필요한 모든 내용은 충분히 들어있다 싶어서, 재료를 잘 다듬어서 글 한 편을 만들었다. 다만 제품 개발에 쓰인 기술과 그 배경, 맥락은 잘 파악되지 않아 의도한 바를 적확하게 표현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4.동기에게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의사를 건넸더니, 알겠단다. 그래서 30분 가량의 퀵 미팅을 진행했다. 본인이 의도한 바를 정말 잘 정리해줬다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동기를 보고 나는 “적임자를 잘 찾아오셨다”라고 농을 건네며 작업을 시작했다. “이 문장은 어떤 의도로 쓰신 거에요?”, “제목을 적어야 하는데, 이 세미나에서 다루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요?” 등을 물어가며 모호했던 부분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5.녹화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나갔다. “그 시간에 다른 미팅이 있어서 못 들어오는 분들은 아쉬워할 거 같다”, “영구박제되는 부분에 대한 부담은 크겠지만, 이것도 다 좋은 경험이 될 거다”, “혹시 화면을 보고 혼자 떠드는 게 큰 부담이 되는 거라면 같이 회의실을 들어가자. 내게 설명하듯이 말하면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영상에 담길 거다”, “같은 내용으로 반복적인 문의가 들어오면 영상 링크를 남기기만 해도 되는 거 아니냐”라면서 설득했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동기는 “알겠다. 믿고 녹화도 하겠다”라고 확정했다.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설득이었다.


6.합의된 버전의 내용으로 맞춤법 검사를 진행하고, 최종 컨펌 과정을 거쳤다. “잘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따라갈 수 없는 스킬이네요!”라는 또 듣기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7.동기한테도 말 했지만, 본인이 여러 날을 고민해서 만든 산출물을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조차도 대변인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내 성과를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기에, 개발자가 느끼는 심적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는 어느 정도 헤아릴 수가 있다. 그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나면, 나머지는 그냥 다 알아서 저절로 되는 거 같다.


8.그러고 보면, 나는 개발자의 마음을 꽤 잘 헤아리는 거 같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에도 꽤 재능이 있는 거 같다.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그래서 내가 가진 재능을 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일이 예전보다 좀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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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ntha
Samantha 7년차 글쟁이. 경제지와 뉴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 IT 기업에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쓰고 있다. 취미로 생산성 앱을 활용한 글쓰기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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